민국 16년, 북평의 상가인 은씨 가문은 자구책으로 사생녀 은소만을 수면제로 재운 뒤 적장녀 대신 깊은 산에 숨겨진 혈족 공작의 성으로 보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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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삼백 년을 살았다는 냉혹하고 포악한 혈족 공작 기야, 그리고 강희 42년에 쓰인 신비로운 피의 혼약서였다.
성에서의 아찔한 순간들 속에서 소만은 자신이 순종적인 '혈액 용기' 역할만 잘 해내면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. 그러나 계약의 공감, 흑금 반지의 이상 징후, 그리고 그녀를 소름 끼치게 한 '드디어 왔구나'라는 한 마디가 삼세 윤회에 걸친 충격적인 거짓말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.
——기야가 삼백 년 동안 지켜온 그 계약서에 적힌 이름은 대체자가 아닌 바로 '은소만' 그 자체였다.
——그리고 피로 쓰인 혼서의 내용은 '삼생삼세를 함께 한다'가 아니라 '매 생애의 기억을 바쳐 네가 살아 있기를'이라는 망각의 저주였다.
각 세력이 계약에 봉인된 시조의 힘을 차지하려 피 훈장을 벌일 때, 은씨 가문이 탐욕으로 친딸을 지하 암시장에 팔아넘길 때, 소만이 마침내 '깊은 애정'이라는 표피를 벗겼을 때, 그녀를 사랑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삼백 년의 고독을 견딘 그 남자가 실은…… 이 삼천 년 감옥을 설계한 '시조' 본인임을 알게 된다.
사냥감과 사냥꾼, 신과 죄수.
시간이 붕괴하는 그 순간, 소만은 피 묻은 단추를 굳게 쥐고 신을 죽일 만한 힘을 지닌 채 삼백 년 전 그 비 오는 밤으로 몸을 던졌다.
이번에는 그녀가 높은 곳에 군림하는——'신'이 될 차례였다.